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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4

복실이는 참 복도 없지 사생결단: 죽고 사는 것을 상관하지 않고 끝장을 내려고 함. 사(死) 신은 죽었다. 니체가 개소리를 선언하고 백 년이 지난 어느 병동에서 나는 그 빌어먹을 문장이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 뼈저리게 알게 됐다. 이유 모를 원인으로 고꾸라진 여자의 차가운 가슴을 두 시간 동안 압박하면서 내가 찾아댄 건 신 대신 자동재새동기였으니까. 그리고, 50분 만에 도착한 보호자가 핏대를 치켜세우고 원망을 배설한 대상 역시도 와이프를 죽음으로 이끈 신이 아닌 땀에 범벅 댄 의료진이었으니까. 차갑게 식어버린 한 구의 시체를 영안실로 옮기면서 나는 미세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무슨 소리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의문의 사운드는 담배연기치럼 미세하게 피어오를 뿐이었다. 아수라장이었던 아까와 달리 적막한 복도.. 2024. 3. 31.
나를 찾아줘 1화 나를 찾아줘 Find me, somewhere in Motel 조그마한 얼굴에 잘록한 허리를 과시한 채 직사각형에 갇혀있던 여자. 그녀의 의도와 달리 담요라도 덮어주고 싶은 일말의 감정이 들 만큼 그녀는 추워 보였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그런 그녀를 아스팔트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10월의 이른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걸까. 세상은 항상 이런 식으로 굴러간다. 내가 필요할 때 그것은 그곳에 없다. 미뤄둔 공허가 찾아온다. 이자율이 센 대출 같다. 원금은 어느새 원래의 형태를 잃고 이자로 뭉쳐진 비대한 눈덩이로 변모한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항상 이런 식이다. 8차선 도로 위에 덩그러니 놓인 기분. 쌩쌩 달리는.. 2023. 12. 30.
침대의 과학 침대의 과학 Science of bed 식욕. 성욕. 수면욕. 대표적인 인간의 본성에서 남자는 두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혼자 있고 싶은 욕구. 동시에, 같이 있고 싶은 욕구까지도. 두 가지 중 어떤 게 먼저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간은 이기적이라 그 순서 따위 개나 줘버렸던 것이다. 보편적으로는. 하지만, 남자에게는 전자가 먼저인 거처럼 보였다. 인터뷰에서 그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는 늘 혼자 있고 싶었다.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요가를 하고, 혼자 커피를 마시는 게 좋았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휴일에 몇 시간이고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 일. 그렇게 몇 달을 그러고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지고(그게 성욕인지 수면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면 둘이 되고 싶은 것이다. .. 2023. 12. 20.
한쪽 귀가 들리지 않던 남자의 후회 한쪽 귀가 들리지 않던 남자의 후회 The regret of a man who was deaf in one ear 남자의 한쪽 귀가 들리지 않기 시작한 건 불과 일주일 전이었어요. 어느 평일처럼 잠에서 깨어 커튼 사이로 드리워진 햇빛을 감상하며 새의 지저김을 듣다 문득, 오른쪽 귀가 작게 들려옴을 확인했습니다. 뭔가 웅웅하고 귀에서 울리는 거 같았어요. 이를 확인하려는 듯 남자가 오른쪽 귀를 막고 손가락을 튕겨보았어요. 탁. 탁. 왼쪽은 평소처럼 똑같은 파장과 울림으로 다가왔어요. 이번에는 반대쪽 귀를 막고 탁. 탁. 남자는 한쪽 귀를 막은 채 고개를 갸우뚱거렸어요. 확실히 그 소리가 3분의 1로 줄어들어 있었거든요. 타노스가 전 세계 인구의 반을 없애기 위해 비장하게 손가락을 튕겼는데 아무 변화도 일어.. 2023. 12. 20.